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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소금과 빛

  이 글은 2월 6일에 나온 주보의 내용이다. 나는 여기에서 종교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나는 빛과 소금을 건축과 연관 지어서 이야기를 할 것이다. 먼저 나 자신에 대해서 앞의 세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빛과 소금과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

2011년 2월 6일 천주교 주보

- 고준석 토마스아퀴나스 신부

  미국의 신학자이며 사회학자인 토니 캄폴로 박사가 95세 이상 된 사람 50명에게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가?”에 대하여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이 조사에 응한 사람 대부분이 다음과 같은 답을 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날마다 반성하는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무런 되새김 없이 무심코 흘려보낸 시간들, 그 시간들이 얼마나 아까운가를 새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실 지나온 하루를 돌아보며 자신을 반성하고 더 나은 내일을 계획하는 삶은 하루하루를 아름답고 가치 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용기 있는 삶”을 살겠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눈앞의 이익을 좇아 양심을 버리고 불의와 타협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세상을 살면서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어 외면하며 산 날들이 인생의 막바지에 와서 뼈아픈 상처가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세 번째는, “죽은 후에도 무언가 남는 삶”을 살겠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목표를 세우고 꿈을 꾸며 힘들게 달려 왔지만 그게 다 물거품처럼 없어지고 마는 허망한 것들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진정 가치 있는 것들을 꿈꾸며 살겠다는 말입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날마다 반성하는 삶”, “용기 있는 삶”, “무언가 남는”, 즉 “참된 가치를 추구”하며 살겠다는 아들의 대답에서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술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학을 하라는 것입니다.

  소금은 값싸고 흔한 것이지만 음식에 없어서는 안 되는 절대 필수물이 바로 소금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물도 부패를 막고, 맛을 내는 소금이 없으면 모두 다 외면해 버립니다. 세상에서 바로 이 소금의 역할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빛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흔한 것이지만 우리 인간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빛입니다. 빛이 있어야 어둠 속에서 사물을 볼 수 있고, 빛이 있어야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둔 세상을 환히 밝히고 차갑게 얼어붙은 세상을 따뜻이 녹이는 역할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저절로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커다란 일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일상에서 무수히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을 날마다 반성하고 새로움을 향해 나아간다면, 어려움 가운데서도 기쁨의 씨를 뿌리고 선을 행할 용기를 갖는다면, 그리고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세상의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남을 참된 진리를 추구한다면, 이러한 사람들은 이미 어떠한 말이나 행동이 없더라도 이미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산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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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읽고 느낀 점에 대해서 쓰기에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가?” 질문을 생각하게 된다. 이 질문은 노인에게 하는 것이 이라서 내게 맞게 바꾼다면, ‘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가?’ 라는 미래형 질문을 하게 된다. 내가 요즘 내 입으로 계속 반복하고 있는 말이다. 사실 내가 건축을 택한 이상 내게 계속 이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건축을 계속하면서 과를 바꾸는 친구들도 많이 보고, 매일 밤을 지세고, 모델을 만드느라 돈도 많이 쓰고 다양하게 힘들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미래가 보장 돼 있지도 않다. 사람들이 “돈도 안 되고 미래 보장도 안 되는데 왜 하는 거야?“ 이 말에 답변을 시원스럽게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끝까지 한다고 말하고 싶다. 어떤 유명한 건축가가 말했다.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10년 동안 굶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만큼 건축적으로 완성되는 시간을 버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만 시간의 법칙‘을 말한다. 만 시간을 그 분야에 노력을 들어야 사람이 그 분야를 잘 할 수 있다고 한다. 만 시간은 10년이라는 기간이다. 2~3년을 공부해서는 완성되지 않는 시간이다. 다른 분야와 다른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솔직히 자신 있다. 나는 정말 지금 이 학교를 다니는 것도 건축이 아니면 학교를 안다닌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안다니고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 자신은 누구보다 있다고 생각한다. 스테이크를 먹을 것도 삼겹살을 먹으면 되고 삼겹살을 먹을 것도 소세지를 먹으면 되고 소세지 먹을 것도 야채를 먹으면 된다. 야채 값이 더 비쌀 때도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가가 아니라 나의 꿈을 어떻게 이룰까 하는 것이다. 지금은 그 방법들에 대해서 고민도 하고 생활이 많이 힘들다. 하지만 힘들어야 성장을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과거형 현재형도 아니고 미래형으로 살기에 힘이 된다.

  위에 말 중에서 첫 번째, “날마다 반성하는 삶” 나에게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 하루를 어떻게 써야 할까 하는 것이다. 나는 요즘에 내가 시간기록표를 만들어 나의 하루를 기록하고 있다. 그것을 기록하게 되면 ‘시간이 없다’는 말은 하지 않게 된다. 누구나 같이 주어진 시간, 반성을 통해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누군가가 말했지 건축가는 50살부터 시작이다. 나는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의 경험들도 해보고 많은 연구를 하고 건축을 하여한다고 생각한다. 그 만큼 경험하고 배워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자기 관리가 철저해야 한다. 그것은 반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지금 내게 불안한 모습은 성장하기 위한 몸부림 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계속 하루를 반성을 통해서 하루 열심히 살고 또 내일 열심히 살면 건축가는 돼 있을 것 이라고 생각한다. 건축가가 되는 것도, 무엇인가가 되는 것도 단순히 이론적인 측면의 뛰어남으로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하루 전체, 생활 하나하나가 나를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내가 이루고 있는 생활들에서 반성이 필요하다. 최근 반성을 하게 된 일 중에 한 가지가 있다. ‘나 혼자 모든 것을 이룰 것이다‘라는 잘 못된 생각이다. 건축을 하거나 무엇을 하든 혼자서 완성할 수 없는 것은 없다는 것을 최근 들어 몸에 뼈저리게 와 닿았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남이 부족한 부분을 내가 채워 줌으로써 완벽이 아니라 완성을 한다는 개념이 최근에 마음에 와 닿는다.

  두 번째, “용기 있는 삶” 이 말은 내게 지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20대는 도전할 나이 이다. 안주할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그 나이, 그 시간, 그 때에 할 일이 있다. 다 같은 말이지만, 그 만큼 ‘순간’이라는 시간 개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돈도 없고, 많은 미래에 대한 걱정도 있지만 나는 안주하지 않을 것이다. 그 안주 하지 않는 것이 날 성장하게 만들 것이다. 주위에서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누구는 연봉이 얼마이다”, 등등 스트레스를 주는 부분은 사실 있다. 하지만 단순한 물질적인 이익을 쫓는 것을 경계 할 것이다. 극단적인 생각도 사실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면서 산다면 살지 않는 것을 택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내가 지금 했던 돈을 벌기위해서 한 일들이 내가 너무 이익을 쫓아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하지만 크게 보면 나는 지금 도전하면서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도전한 만큼 얻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오토바이 여행을 시작으로 내 인생의 화두를 던졌다. 실천이라는 것이다. 나는 절대 타협하지 않고, 생각한 것을 실천해 나갈 것이다.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만이 설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설계하는 것 자체가 건축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하게 된다. 나 자신을 어떤 건물로 만들까 하는 것이다. 생활 하나하나가 나의 설계과정인 것이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모두 프로세스를 남기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주위 친구들은 살아있는 나의 증언이 될 것이다. 솔직히 앞으로의 나의 10년이 많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계속 나 자신의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환경, 위험성 있는 도전을 계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에 의해서 나의 인생에 파동 치는 고난 그래프가 보인다. 하지만 나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나는 내가 선택해서 험난해지는 나의 인생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사실 요즘에는 결혼을 해서 뭔가 안정된 환경에서 살아가고 싶은 생각도 종종 한다. 지금 23살이라는 나이만 해도 뭔가 초등학교 졸업이후로 일 년에 계속 너무 많은 상처도 있었고, 기쁨도 있었지만 힘들었던 것이 생각이 난다. 정말 그 불안했던 고등학교 시절.. 옆에 있던 여자친구 때문에 이탈하지 않고 여기 까지 올수 있었다는 생각도 한다. 그때 그렇게 힘들었기에 지금 남들 보다 더 성장해 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한번밖에 안사는 인생이 아닌가? 부모님께서는 많이 걱정하시지만 내가 하는 선택에 끝까지 믿음을 주시기에 많은 힘이 된다. 나의 20대의 정의는 숫자적 정의가 아닌, 용기에 의한 도전이다.

  세 번째, “죽은 후에도 무언가 남는 삶” 이다. 이것은 내 인생의 목표이다. 죽은 후에 무언가를 남는 삶..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가 내게 해주신 말씀 중 하나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다. 나는 매일 이 말을 생각 했던 것 같다. 그 만큼 내게는 내 이름을 남기고 싶은 욕구가 있다. 한 내 친구는 농담으로 이런 말을 나에게 말을 했다. “너는 스펙도 없냐?” “뭐 먹고 살래?” 그 친구는 최고의 대학을 다니며 취직하고 싶은 곳은 유명 금융회사이다. 그 회사에 들어가게 되면 일주일에 100시간을 일하고 연봉으로 4억 이상을 받는다고 한다. 이게 나에게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냥 한마디만 하게 된다. “돈을 그 정도 벌어서 내 이름이 세상에 남을까?” 내가 유명해지기 위해서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나의 철학을 펼쳐 내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평생하면 이름을 따라 온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홍재 이름을 남길 것이다. 내가 경계해야 될 것은 이름만 남긴다는 생각이다. 김광현 교수님과의 대화가 생각이 난다.

나 : “루이스칸 처럼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김광현 : “허허, 집을 거꾸로 짓거나, 집을 한번 빨갛게 칠해봐!”
나 : “네?”
김광현 : “너는 왜 유명해 지려고만 하느냐? 좋은 건축을 하면 자연스럽게 유명해 지는 것이지! 유명해지려고 건축을 하면 안 된다.”
나 : (침묵)

  이 대화 몇 마디에서 내 뒷통수를 때렸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 만큼 나는 너무 유명해지려고만 했던 생각을 가졌다. 저 일이 있은 뒤에 나의 목표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하게 됐다. 돈이든, 명예든 따라 오는 것이다. 경계해야 한다.

  위의 세 가지에 대한 것은 나의 배경에 대한 이야기 이고 건축과 하고 싶은 이야기는 빛과 소금이다. 저 위의 배경을 바탕으로 결국 내가 되고 싶은 것은 빛과 소금이기 때문이다. 내가 종교적인 이야기를 끌어들여서 거부 할 수도 있는 사람도 있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단순히 건축에 대한 나의 의견이다.

  ‘빛과 소금이 되어라’라는 말을 한다. 나는 여기에서 말하는 빛과 소금을 건축과 관련지어서 이야기 할 것이다. 빛과 소금은 흔하다. 우리는 그 소중함을 잊고 살아간다. 건축도 흔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도 잊고 살아간다. 우리는 빛과 소금이 없으면 살아 갈 수 없다. 우리는 건축이 없으면 살수가 없다. 우리에게 빛이 없으면 앞을 볼 수 없고, 우리에게 소금이 없으면 음식물은 부패하고, 맛이 없다. 빛과 소금이 없듯 건축이 존재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앞을 볼 수 없고 맛이 없다. 이러한 의견도 낼 수 있을 것이다. 빛이 없어도 어둡게 살 수 있고, 소금이 없으면 다른 것으로 먹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건축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우리는 그것들이 있음으로써 더 큰 무엇인가를 얻는 것이다. 추상적인 ‘무엇인가’라는 개념이 한 마디로 표현 못하는 다양한 것이다.

  빛은 가장 흔한 것이지만 우리 인간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빛이 있어야 어둠 속에서 사물을 볼 수 있고, 빛이 있어야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빛은 어두운 세상을 환히 밝히고 차갑게 얼어붙은 세상을 따뜻이 녹이는 역할을 한다. 나는 건축 자체가 이 빛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함으로서 따뜻함을 주고, 안전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빛이 없이 인위적인 빛으로 살아 갈수도 있다. 건축도 마찬가지로 건축이라는 단어 없이 집으로만 살아 갈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빛은 자연의 빛을 말한다) 하지만 빛이 있다면 어둠속에서 사물을 더 잘 볼 수 있듯이 우리의 생활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게 해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독도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빛은 우리에게 건축에 의해서 주어진 환경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빛에 의해서 우리는 더 좋은 환경을 제공 받듯이, 건축에 의해서 더 좋은 공간을 제공 받는 것이다. 우리에게 밝은 빛이 부족하면 사물은 볼 수 있으나 제대로 못 보듯, 제대로 된 건축이 없어서 살수는 있으나 잠재력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금도 값싸고 흔한 것이지만 음식에 없어서는 안 되는 절대 필수물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는 건축이 반드시 필요 하는 의식주의 한 부분이다. (여기에서는 건물과 건축의 차이를 두지 않는다) 소금은 음식물 부패를 막고, 맛을 낸다. 만약 음식에 소금이 없으면 모두 다 외면해 버린다. 건축도 기능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건축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 건물의 아름다움을 찾기 힘들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건축으로 인해 단절이 생길 수도 있고, 행복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택에서 가족 간의 동선을 분리시켜 버린다면 가족끼리 단절을 이룰 것이다. 이렇게 소금이 세상에 대한 역할과 건축이 세상에 대한 역할은 우리가 잊고 살아가지만 너무 나도 중요하다.

  이번에는 빛의 종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빛의 종류도 여러 가지이고 그 빛의 종류에 따라서 의미가 다양하다. 핑크빛은 사창가를 나타낸다. 정육점의 빛과도 겹치지만 그것을 보면 누구나가 그런 곳이 나를 떠올리게 된다. 나, 건축 그리고 빛 관계를 두고 비유한다면, 내가 어떠한 건축물이 되느냐, 내가 빛 중에서도 어떠한 빛이 되느냐를 생각할 수 있다. 빛을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빛에 대한 밝기의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빛이 주는 열의 의미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빛이 필요한 존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빛이 고통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막의 경우 빛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남극의 경우, 런던과 같이 빛을 자주 못 보는 경우 빛을 원하겠다. (여기에서는 빛은 햇빛을 기준으로 한다) 그만큼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빛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해야 한다. 나는 밝게 비춰 주기위해서 빛을 주지만 그것은 그 사람에게는 너무 덥고, 위험 해질 수 있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생각하면 최근 공부하고 있는 건축가와 사용자간의 갭을 생각하게 된다. 나는 좋은 환경을 위해서 빛을 비춰주지만 정작 사용자는 빛을 피하고 싶은 것이 설계의 잘못된 방향의 설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빛이 어떠한 종류의 빛이 될까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 빛의 종류에 따라 이용하는 사람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소금의 종류에도 다양하다. 내가 어떤 건축물이 될까 혹은 내가 어떤 소금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한다. 못 쓰는 소금도 존재하고 그것이 소금이 아니라 그냥 돌로 남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의 한 지역에서 나는 소금이 가장 비싸다고 한다. 이름을 타서 가격이 더 비싸다고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소금이 유명한 이유는 그 소금 자체적으로 좋은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나도 이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내가 소금이 된다고 한다면 단순히 내가 유명해지려고 한다면 유명해지는 소금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남들에게 정말 필요한 존재가 됐을 때 유명해지는 것이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전통성을 이다. 우리의 소금 중에 천일염이 있다. 이 소금은 전 세계에서 정말 경쟁력이 있는 소금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프랑스 소금을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 것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우리의 한옥이나 우니라나 만의 건축을 잊고 외국의 건축물만을 찬양하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 원래는 우리것이 더 뛰어나지만, 잊고 사는 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된다. 소금의 종류에 따라서 쓰이는 곳이 다르다. 우리는 그것을 맞는 곳에 썼을 때 그것이 최고의 소금이 되는 것이다. 건축도 최적의 재료, 최적의 정소에 썼을 때 최고가 되는 것이다. 음식을 어떻게든 맛을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나치고, 부족하고 알맞지 않으면 그것은 사람들이 찾지 못하고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기까지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적절한 기능을 수행할 때 그것이 진짜 소금이다.

  이 글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내 건축이 세상에 소금과 빛을 되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매일 소금과 빛을 이용하면서 그것의 감사함과 필요함을 느끼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건축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 하지만, 내가 확신하는 것은 건축의 중요성을 깨닫게 오는 날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지금은 아직 경제적으로 여력이 부족하고 문화적으로 수준이 안 닿아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지금 사람들에게 소금은 맛을 내면 그만이고 빛은 밝혀주면 그만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생각에도 바탕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잊고 있기 때문에 깨달음만 있으면 된다. 빛과 소금은 우리 생활에서 어떠한 사치도 없다. 색으로 무엇인가를 자랑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다. 지금 내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사치, 허세, 허영이 너무 많이 쌓여 있다는 것을 느낀다. 건축도 마찬가지이다. 그 자체가 아름다울 수 있어야 한다. 색이 있는 소금, 다양한 불빛보다도 자연 상태 그대로의 소금이 아름답다. 사람들은 아직 진짜 소금의 맛과 진짜 빛을 보지 못했다. 그것을 보게 된다면 진짜 소금과 빛을 찾게 될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밀을 세상 사람들에게 대량생산하게 해줌으로써 가난을 줄임으로써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때 나는 떠올랐다. 나도 건축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다는 생각이다. 나도 건축으로 평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건축관도 그렇다. 행복, 평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이 건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빛과 소금처럼 누구나가 필요로 하고 중요한 역할을 가진 건축물로 사람들에게 보답했을 때 건축 평화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다. 그 건물은 화려한 소금, 유명한 소금도 아니다. 서민 모두가 찾을 수 있는 최고의 소금인 것이다. 빛이 창문으로만 들어온다고 빛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구조, 형태, 결국 공간으로 빛을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그 만들어진 빛이 사람에게 치료제가 될 수 있고, 한 사람에게 빛이 영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건축물을 할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전진만 하면 된다. 지금은 건축시장이 어렵다지만 나는 굶어 죽지 않을 것이다. 소금과 빛이 필수적이듯 건축도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정도’이다. 모든 것은 정도를 넘으면 안 된다. 술잔에 술이 일정 이상이 넘으면 넘치고 만다. 술잔을 들기도 힘들다. 그것처럼 모든 것이 ‘정도’를 지켜야 한다. 빛과 소금도 마찬가지이다. 빛의 양이 너무 많아지면 더위, 눈부심 현상에 의해서 그것은 적으로 변한다. 소금도 양이 너무 많아지면, 사람들에게 너무 짜서 몸을 해친다.

  그러면 건축도 너무 지나치면 안 된다. 건축이 너무 욕심을 가지면 안 된다. 건축가 승효상 선생님과 김광현 교수님이 말한 건축의 사회적 역할에 관해서 말한 것이 생각이 난다. 내가 지은 것이 내 혼자만의 이용물이 아니라 보는 사람들에게도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나만을, 건축주만을 위한 건축을 하는 것이 아니다. 건축을 적절하게 한다는 말은 안 되지만, 내가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건축이 욕심을 내서 주위의 풍경을 해친다거나, 나만 강조되려고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요리를 할 때 소금이 욕심을 내게 되면 맛있어 지는 게 아니라 짜서 결국 못쓰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금이 몸에 안 좋다고 해도 안 쓸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Shelter의 입장으로 건축을 피할 수 없듯이 우리는 빛과 소금을 활용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건축을 잘 이용하고, 우리가 빛과 소금을 잘 이용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득이 될 것이고, 잘 이용하지 못한다면 실이 될 것이다. 하루 만에 빛과 소금과 같은 건축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나의 모든 경험과 지식들이 쌓일 때 빛과 소금과 같은 건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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