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4 (商道)
1.
"사람들이 재물과 색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마치 칼날에 묻은 꿀을 탐하는 것과 같다. 한 번 입에 댈 것도 못되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핥다가 혀를 상한다. 정과 사랑은 어떠한 재앙도 꺼리지 않는다. 모든 욕망 가운데 성욕보다 더한 것은 없다. 성욕의 크기는 한계가 없는 것이다. 다향히 그것이 하나뿐이었기에 망정이지 둘만 되었어도 부처가 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애욕을 지닌 사람은 마치 횃불을 들고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손을 태울 화를 입게 될 것이다."
2.
인간이 빚어낼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과 인간이 표현해낼수 있는 최고의 백색을 지닌 갑번자기, 그것이 더 이상 우명옥의 목표가 아니었던 것이다.
우명옥이 이제 추구하고 있던 것은 그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용이었다. 최고의 아룸다움을 지닌 갑번자기라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형상이며, 최고의 순백색을 지닌 갑번자기라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형태를 가진 형식에 그치지 않았다. 그런 그릇들은 다만 그릇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가령 천하의 갑번자기라 할지라도 그 속에 물을 담으면 뚝배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그 속에 약윽 담으면 약탕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값싼 질그릇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 보화를 넣으면 이는 진기가 되는 것이며, 값싼 오지 그릇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 향약을 담으면 향기가 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의 명기는 그 그릇의 모양새나 빛깔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명기는 담는 내용에 따라 좌우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천하의 명작이나 예술 또한 그 아름다움과 표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와 그림이 그 아름다움을 통해 무엇을 담고 있는가 하는 내용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이다.
우명옥은 고통을 통해 인생이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며, 나고 죽는 것도 아니며, 오고 가는 것도 아닌 것을 깨달았다. 본시 그러한 인생이 고통스러운 것은 그것을 소유하려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임을 우명옥은 각성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우명옥은 이제 아름다운 형태나 빛깔을 가진 그릇이 아니라 인간이 지닌 헛된 욕망의 유한성을 경계하는 그릇, 즉 '늘 곁에두고 보는 그릇'을 만드는 것이 최종 묙표였다.
늘 곁에 두고 보는 그릇, 이를 유좌지기라고 부른다. 유좌지기란 마음을 적당히 가지라는 뜻을 새기기 위해 늘 곁에 두고 교훈을 삼는 그릇을 말함인데 이 그릇에 대해서 말한 사람은 공자였다.
천하의 성군이었던 환공은 평소에 속이 비면 이리저리 기울고 가득 채우면 엎질러지고 적당하게 물을 채워야만 중심을 잡고 잘 서 있는 유좌지기를 보면서 자신이 어떻게 마음을 잡고 욕망을 간수해야 하는가의 교훈을 얻곤 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어느 쪽으로 치우치는 일 없는 중용의 도를 강조한 공자에게 있어 환공의 유좌지기야말로 자신의 사상을 대변하는 그릇이었던 것이다.
3.
노자는 <도덕경>에서 말하였다.
'적당히 채워라. 어떤 그릇에 물을 채우려 할 때 지나치게 채우고자 하면 곧 넘치고 말 것이다. 또한 칼은 쓸수 있을 만큼 날카로우면 되는 것이지 예리하게 갈고자 하면 날은 지나치게 서서 쉽게 부러지고 만다. 금은보화를 지나치게 가진 자는 남의 시기를 사게 되며, 또한 부귀해여저서 지나치게 교만해지면 상황이 어지러워져서 결국 이 모두를 탕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적당히 성공한 후에는 그곳에 영원히 머물러 있으려고 노력해서는 아니되며 적당히 때를 보아서 물러감이 바로 하늘의 도리인 것이다. 하늘의 만물을 낳되 소유하지 안흥며, 도한 무리하지도 않고 공을 이루어도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도, 즉 자연의 도리인 것이다.'
노자가 말하였다. '모든 불행은 스스로 만족함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4.
"이 세상 만물 중에서 앉지 않아야 할 곳을 찾아 앉는 사물은 오직 사람뿐인 것이다."
"사람만이 항상 높은 곳을 찾아 앉으려 하고, 좋은 곳을 찾아 앉으려 하고, 한 번 앉으면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눈송이 하나보다도 못한 존재인 것이다."
5.
'현자는 모든 것에서 배우는 사람이며, 강자는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며, 부자는 자기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
6.
애욕. 이성에 집착하는 성적인 욕망
육체적 욕망. 마셔도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일찍이 부처는 애욕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왕이 거동하면 신하도 따라가듯 애욕이 가는 고에는 항상 미혹이 따른다. 습한 땅에 잡초가 무성하듯 애욕의 습지에는 번뇌의 잡초가 무성한다. 또한 애욕은 나찰의 딸과 같아 아이를 낳는 대로 잡아 먹고마친내는 자기의 남편까지도 잡아 먹는다.중생들이 선업의 아이를 낳으면 낳는 대로 잡아먹고 중생까지도 잡아 먹는다. 애욕은 또한 꽃밭에 숨은 독사와 같다. 사람들이 꽃을 탐해 꽃을 꺽다가 독사에 물려 죽는다. 중생들은 오욕의 꽃을 탐하다가 애욕이 뿜는 독사의 독을 받고 마친내 악도에 떨어진다."
그리고 나서 부처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나리는 것이다.
"차라리 남근을 독사의 아가리에 넣을지언정 여자에 몸에는 대지말라. 이와 같은 인연은 악도에 떨어져 헤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애욕은 착한 법을 태워버리고 불꽃과 같아서 모든 공덕을 없애버린다. 애욕은 얽어묶는 밧줄과 같고 시퍼런 칼날을 밟는 것과 같다. 애욕은 험한 가시덤불에 뛰어드는 것과 같고 성난 독사를 건드리는 것과 같으며 어러운 시궁창과 같은 것이다."
7.
일찍이 부처는 경전에서 말하였다.
애욕이 생사의 근원임을 밝힌 부처는 '어찌하면 윤회의 근원을 끊을 수 있습니까' 하고 묻는 미륵보살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 모든 중생들에게는 시작없는 옛적부터 갖가지 애정과 탐심과 음욕이 있기 때문에 생사가 윤회하는 것이다. 중생들은 음욕으로 인해 각자의 성품과 생명을 타고나는 것이니 윤회의 근원이 애욕임을 명심하여라. 음욕이 애정을 일으켜 생사가 계속되는 것이다. 음욕은 사랑에서 오고, 생명은 음욕 때문에 생기는데 중생이 또다시 생명을 사랑하여 드디어 음욕을 의지하니 음욕을 사랑함은 원인이 되고 생명을 사랑함은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사람이 애욕에 얽매이면 마음이 흐리고 어지러워 도를 볼 수 없다. 깨끗이 가라앉은 물을 휘저어 놓으면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그림자를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너희들은 반드시 애욕을 버려야 한다. 애욕의 때가 씻기면 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도를 보는 사람은 마치 횃불을 가지고 어두룬 방안에 들어갔을 때 어두움이 사라지고 환히 밝아지는 것과 같다. 도를 배워 진리를 보면 무명은 없어지고 지혜만 남을 것이다."
그리하여 부처는 <법구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지 말라. 미운 사람도 가지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그러므로 사랑을 일루러 만들지 말라. 사랑은 미움의 근본이 된다. 사랑도 미움도 없는 사람은 모든 구속과 걱정이 없다."
"가까이 사귄 사람끼리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 그리움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연정에서 근심이 생기는 것임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애욕은 그 빛이 곱고 감미로우며 즐겁게 한다. 또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산산이 흐뜨려 놓는다. 관능적인 애욕에는 이와 같은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고 ㅏ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1.
"사람들이 재물과 색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마치 칼날에 묻은 꿀을 탐하는 것과 같다. 한 번 입에 댈 것도 못되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핥다가 혀를 상한다. 정과 사랑은 어떠한 재앙도 꺼리지 않는다. 모든 욕망 가운데 성욕보다 더한 것은 없다. 성욕의 크기는 한계가 없는 것이다. 다향히 그것이 하나뿐이었기에 망정이지 둘만 되었어도 부처가 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애욕을 지닌 사람은 마치 횃불을 들고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손을 태울 화를 입게 될 것이다."
2.
인간이 빚어낼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과 인간이 표현해낼수 있는 최고의 백색을 지닌 갑번자기, 그것이 더 이상 우명옥의 목표가 아니었던 것이다.
우명옥이 이제 추구하고 있던 것은 그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용이었다. 최고의 아룸다움을 지닌 갑번자기라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형상이며, 최고의 순백색을 지닌 갑번자기라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형태를 가진 형식에 그치지 않았다. 그런 그릇들은 다만 그릇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가령 천하의 갑번자기라 할지라도 그 속에 물을 담으면 뚝배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그 속에 약윽 담으면 약탕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값싼 질그릇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 보화를 넣으면 이는 진기가 되는 것이며, 값싼 오지 그릇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 향약을 담으면 향기가 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의 명기는 그 그릇의 모양새나 빛깔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명기는 담는 내용에 따라 좌우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천하의 명작이나 예술 또한 그 아름다움과 표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와 그림이 그 아름다움을 통해 무엇을 담고 있는가 하는 내용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이다.
우명옥은 고통을 통해 인생이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며, 나고 죽는 것도 아니며, 오고 가는 것도 아닌 것을 깨달았다. 본시 그러한 인생이 고통스러운 것은 그것을 소유하려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임을 우명옥은 각성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우명옥은 이제 아름다운 형태나 빛깔을 가진 그릇이 아니라 인간이 지닌 헛된 욕망의 유한성을 경계하는 그릇, 즉 '늘 곁에두고 보는 그릇'을 만드는 것이 최종 묙표였다.
늘 곁에 두고 보는 그릇, 이를 유좌지기라고 부른다. 유좌지기란 마음을 적당히 가지라는 뜻을 새기기 위해 늘 곁에 두고 교훈을 삼는 그릇을 말함인데 이 그릇에 대해서 말한 사람은 공자였다.
천하의 성군이었던 환공은 평소에 속이 비면 이리저리 기울고 가득 채우면 엎질러지고 적당하게 물을 채워야만 중심을 잡고 잘 서 있는 유좌지기를 보면서 자신이 어떻게 마음을 잡고 욕망을 간수해야 하는가의 교훈을 얻곤 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어느 쪽으로 치우치는 일 없는 중용의 도를 강조한 공자에게 있어 환공의 유좌지기야말로 자신의 사상을 대변하는 그릇이었던 것이다.
3.
노자는 <도덕경>에서 말하였다.
'적당히 채워라. 어떤 그릇에 물을 채우려 할 때 지나치게 채우고자 하면 곧 넘치고 말 것이다. 또한 칼은 쓸수 있을 만큼 날카로우면 되는 것이지 예리하게 갈고자 하면 날은 지나치게 서서 쉽게 부러지고 만다. 금은보화를 지나치게 가진 자는 남의 시기를 사게 되며, 또한 부귀해여저서 지나치게 교만해지면 상황이 어지러워져서 결국 이 모두를 탕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적당히 성공한 후에는 그곳에 영원히 머물러 있으려고 노력해서는 아니되며 적당히 때를 보아서 물러감이 바로 하늘의 도리인 것이다. 하늘의 만물을 낳되 소유하지 안흥며, 도한 무리하지도 않고 공을 이루어도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도, 즉 자연의 도리인 것이다.'
노자가 말하였다. '모든 불행은 스스로 만족함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4.
"이 세상 만물 중에서 앉지 않아야 할 곳을 찾아 앉는 사물은 오직 사람뿐인 것이다."
"사람만이 항상 높은 곳을 찾아 앉으려 하고, 좋은 곳을 찾아 앉으려 하고, 한 번 앉으면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눈송이 하나보다도 못한 존재인 것이다."
5.
'현자는 모든 것에서 배우는 사람이며, 강자는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며, 부자는 자기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
6.
애욕. 이성에 집착하는 성적인 욕망
육체적 욕망. 마셔도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일찍이 부처는 애욕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왕이 거동하면 신하도 따라가듯 애욕이 가는 고에는 항상 미혹이 따른다. 습한 땅에 잡초가 무성하듯 애욕의 습지에는 번뇌의 잡초가 무성한다. 또한 애욕은 나찰의 딸과 같아 아이를 낳는 대로 잡아 먹고마친내는 자기의 남편까지도 잡아 먹는다.중생들이 선업의 아이를 낳으면 낳는 대로 잡아먹고 중생까지도 잡아 먹는다. 애욕은 또한 꽃밭에 숨은 독사와 같다. 사람들이 꽃을 탐해 꽃을 꺽다가 독사에 물려 죽는다. 중생들은 오욕의 꽃을 탐하다가 애욕이 뿜는 독사의 독을 받고 마친내 악도에 떨어진다."
그리고 나서 부처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나리는 것이다.
"차라리 남근을 독사의 아가리에 넣을지언정 여자에 몸에는 대지말라. 이와 같은 인연은 악도에 떨어져 헤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애욕은 착한 법을 태워버리고 불꽃과 같아서 모든 공덕을 없애버린다. 애욕은 얽어묶는 밧줄과 같고 시퍼런 칼날을 밟는 것과 같다. 애욕은 험한 가시덤불에 뛰어드는 것과 같고 성난 독사를 건드리는 것과 같으며 어러운 시궁창과 같은 것이다."
7.
일찍이 부처는 경전에서 말하였다.
애욕이 생사의 근원임을 밝힌 부처는 '어찌하면 윤회의 근원을 끊을 수 있습니까' 하고 묻는 미륵보살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 모든 중생들에게는 시작없는 옛적부터 갖가지 애정과 탐심과 음욕이 있기 때문에 생사가 윤회하는 것이다. 중생들은 음욕으로 인해 각자의 성품과 생명을 타고나는 것이니 윤회의 근원이 애욕임을 명심하여라. 음욕이 애정을 일으켜 생사가 계속되는 것이다. 음욕은 사랑에서 오고, 생명은 음욕 때문에 생기는데 중생이 또다시 생명을 사랑하여 드디어 음욕을 의지하니 음욕을 사랑함은 원인이 되고 생명을 사랑함은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사람이 애욕에 얽매이면 마음이 흐리고 어지러워 도를 볼 수 없다. 깨끗이 가라앉은 물을 휘저어 놓으면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그림자를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너희들은 반드시 애욕을 버려야 한다. 애욕의 때가 씻기면 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도를 보는 사람은 마치 횃불을 가지고 어두룬 방안에 들어갔을 때 어두움이 사라지고 환히 밝아지는 것과 같다. 도를 배워 진리를 보면 무명은 없어지고 지혜만 남을 것이다."
그리하여 부처는 <법구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지 말라. 미운 사람도 가지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그러므로 사랑을 일루러 만들지 말라. 사랑은 미움의 근본이 된다. 사랑도 미움도 없는 사람은 모든 구속과 걱정이 없다."
"가까이 사귄 사람끼리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 그리움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연정에서 근심이 생기는 것임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애욕은 그 빛이 곱고 감미로우며 즐겁게 한다. 또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산산이 흐뜨려 놓는다. 관능적인 애욕에는 이와 같은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고 ㅏ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